사람은 자기 안에 선한 것이 없으므로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없다. 이것을 안 사람은 자기의 부족을 절감하고 자기 밖의 세계에서 그 필요를 채워 줄 것을 찾지만 이 세상도 또한 사람에게 구원에 유조한 아무것도 줄 수 없음이 사실이다. 이런 처지의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늘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으므로, 신자에게 기도하라 명령하셨고 또 믿음으로 하는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한 사실은 실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신자는 기도하여 하나님께 구원에 필요한 선한 것을 얻어, 땅에 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고 정하신 영광의 목적지에 빗김이 없이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무방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사적으로나, 또 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예배드리는 교회와 더불어 항상 해야 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생활 요소이다.
기도를 하려면 기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기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경우를 너무 흔하게 목격한다. 이는 칼빈 선생이 말한 바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의 주인이시며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신 것과 그에게 구하라고 격려하시는 분이심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앞에 가서 달라고 구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땅속에 감추인 보화가 어디 묻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어도 그 보화를 무시하는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다."(기독교강요.3권 20장 1절)의 예이다. 또 기도는 단지 많이 하고 지성으로 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줄 알고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소위 릴레이 기도, 그것도 부족하면 기도원에 들어가 작정 기도까지 하는 형편이다. 즉 기도의 실효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자비와 명령과 약속에 두지 않고 빈곤하고 천박한 자기 내부에 두고 있는 경우인데 이는 모두 바른 기도관의 부재의 소치이다.
믿음으로 항상 기도할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그 말씀을 통하여 풍부히 가르쳐 주고 있다. 또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로 주어진 은혜의 방도임을 깨달은 교회의 선생들은 기도가 단지 경건 생활의 한 가지 양태가 아니라 은혜의 방도임을 깨닫고 바른 기도관을 수립하여 그것을 교회에 가르치기를 쉬지 않았다. 은혜의 방도란, 말 그대로 구속의 은혜를 하나님께 얻는 수단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식이 잘못되었을 때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은 로마교회의 타락이 잘못된 성경관, 성례관에 있었음을 지적하고 그것을 바로잡는 것을 개혁의 초석으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기도를 은혜의 방도로 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의) 은혜로 주신 결과들은 일반적으로 은혜를 받는 수단으로도 쓰입니다"(본서 1장) 하는 저자의 말과 같이 은혜의 열매로 생긴 은혜의 방도라는 점에서 기도에 관하여 바른 지식을 수립하는 것은 매우 긴요한 일이다. 이미 성경에서, 그리고 요리문답서에서(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54. 178-196: 소요리문답 88. 98-107.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6-129 등) 기도에 관하여 총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크게 주의를 하지 않고, 또 신학교에서 배우는 교의신학서 내용 가운데도 기도의 항목을 잘 다루지 않는 것이 흔한 실정이다. 교회가 바로 기도할 줄 모르는 것이 대단히 애석한 일이지만 이런 현실에서는 이미 정해진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차제에 성약출판에서 기도 서책을 출간하였다. 본서는 저자이신 김홍전 목사님께서 그분이 시무하시던 성약교회 강단에서 가르치신 내용을 담은 것으로 총 15강으로 되어 있다. 1-2강은 기도에 대한 총론, 3-4강은 기도자의 심상에 대하여, 5-6강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7-10강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에 대하여, 11장은 말씀과 기도, 12-13장은 기도의 내용, 14-15장 기도의 실생활로 나누어진다. 이 책은 신자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어떻게 기도 생활을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지만, 그 대부분은 기도가 무엇인가 하는 기도 자체, 곧 기도론을 다루고 있다. 각 강설의 제목만 놓고 볼지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란 자신의 부족과 결핍을 알고 심히 겸손히 되어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요 오직 그의 약속만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서 그의 뜻대로 자기의 소원을 아뢰는 것임을 알게 된다. 기도의 중요한 요소란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인 것이다. 이런 바른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항상 기도하게 되고, 그런 믿음의 터 위에서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본서는 특별히 기도의 내용보다는 기도 그 자체를 잘 가르쳐 주므로 신자로 하여금 항상 기도하도록 이끌어 준다.
1-2강 기도에 대한 총론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생긴 은혜의 수단이므로 그것의 정하신 본의를 알고 바르게 선용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어서 기도를 오용하는 예가 많다. 기도는 종교의 경건 행위가 아니다. 또 자기 쾌락과 행복추구의 도구도 아니다. 기도로 종교 삼매경에 들어가는 수단을 삼는 신비주의는 신앙의 본질에서 떠난 것이다. 타성에 젖어 확신 없이 하는 기도나 기도를 합리주의로 설명해보려는 것도 모두 기도의 특권을 우롱하는 태도이다. 기도에는 정상적인 기도만이 아니라 사이비적인 기도도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약속하셔서 내신 기도에 대한 큰 원칙 즉 바른 기도론이 수립되어야 한다. 기도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자리가 있음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를 살펴야 한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3-4강 기도자의 심상에 대하여.
그러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의 위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마음자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을 가진 자로, 새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사람은 자기의 영달이나 재난의 면피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자기의 무능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데서 시작하여 그 눈을 하나님께로 향한다. 세상을 의지하고 사는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세상 위에 실현하고 사는가, 이것이 불신자와 신자를 구별한다. 신자는 항상 자신이 이 세상 저급한 사람의 소리를 듣기 쉽고 그것에 감화되기 쉬운 존재임을 알고 자기의 연약을 자복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 그분과 그분의 영광을 생각하되,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영광의 능력이 전체적으로 나를 지배하여서 나의 생각과 목적과 생명의 의의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게 되기를 구해야 한다"고 저자는 가르치신다.
5-6강 기도 받으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기도자는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인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천지를 주관하시는 대주재로서 만물의 존재와 행위를 일일이 주관하시고 간섭하시는 주권자이시다. 기도자가 하나님은 내 자유의사에 의해서 언제든지 접촉할 수 있고 언제든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심히 오만한 일이다. 지극히 높고 두려우신 분임을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용납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시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성신을 의지하고 살며 신령한 생활에 힘써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이 세상에 두신 뜻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그 뜻을 수행하기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항상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통이 끊이지 않는 위치에서 모든 것을 아뢰는 것이 기도이다. 자기에게 어떤 돌발적인 큰일이 생겨 황급히 무엇을 구하거나 자기 힘대로 하다가 부족이 생기면 그 부족분만을 채워 주시도록 구하는 것은 참된 기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만사를 통어, 통재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유일하시고 신실하신 구주임을 믿고 만사에 사람이나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무지와 무능을 알고서도 크신 사랑을 베풀기를 기뻐하시되 하나님과의 교통과 연락에 참여케 하셔서 이 땅에서 당신의 일을 이루게 하신다. 이것이 기도의 본질이며 특권이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살전 5:17), 항상(눅 18:1), 무시로(엡 6:18-20) 기도하여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통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7-10강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에 대하여
기도할 때 간절한 기도에 초점이 모아진다면 인간적인 의의 추구와 그에 바탕을 둔 생활 습관을 조장할 수 있다. 기도는 믿음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의심치 않는다 할 때 이 말은 구한 것은 반드시 받는다고 단언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구하는 내용이 주께서 주시려는 뜻과 부합되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고 의심치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의와 그리스도의 은혜와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사 그 백성들의 구함을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벧전 4:19)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이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과 선의를 확신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없이 한번 구해보자 하고 나서는 것은 믿음이 없는 일이요 그런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 선의를 굳게 믿고 기도하면, 기도가 하나님과 그 백성 간에 무슨 조건하에서 여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교통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가 비록 잘못 구하였을지라도 그것을 시정해 가시며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길을 인도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의 응답은 기도 후 즉시 답변이 오는 즉답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하는 정신을 고쳐 주시고 그의 동기를 순화시켜 주셔서 신령한 자의 위치, 즉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심정을 갖게 하신 후에 주시는 지답이 있다. 또 동일한 이유로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고 다른 것으로 대답하시는 변답이 있고 또 길게 천연하신 후에 주시는 체답도 있다. 그러므로 기도자는 신, 불신 사이에 끼어서 방황해서는 안 되고 믿음으로 구하되 자기가 무엇을 하나님께 기도로 청원하였는지 기억하여 그 응답 여부를 늘 확인하는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11강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대하여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도구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말씀으로 주신 은혜의 열매로서 주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앞서지 못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시는 은혜를 대신하지도 못한다. 기도를 만능으로 생각하고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도외시한 채 기도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듣는 위치에 서서 기도드려야 한다. 인생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 인류 역사와 나 개인의 일생 행보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경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런 것을 알아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나는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하며 존재해야 하는가를 먼저 알고 있어야 정당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인데, 이것들은 기도만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12-13강 기도의 내용
먼저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 개인 개아(個我)만 생각하고 대아(大我) 즉 거룩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여 이를 품고하는 일이 빈약하면 정상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은 언약 공동체를 경영하셨고 개인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전체에 대한 한 분자로 서 나가도록 하신 사실을 알고 내가 속한 이 거룩한 교회에 대해 구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위하여 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남을 위한 도고를 해야 하는 데 이는 우리가 인류 사회의 한 분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되 그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사실을 믿는 까닭에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대권이 기뻐하시는 대로 영광스럽게 만물 위에 역사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기본적으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사 새사람으로 살게 하셨으므로 새사람의 장성한 위치에 이르러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살 수 있도록 구하는 것이 기도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시대마다 불어오는 그 시대의 조류에 밀려 세상 정신에 감염되어 하나님 백성의 특징도 나타내지 못하고 세월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구해야 한다.
14-15강 기도의 실생활
이 같은 기도를 항상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신령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다. 신령한 생활이라는 것은 어떤 종교 수도자들이 취하는 바 마음이 청정하고 은둔적인 고고한 생활이 아니라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되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서 성숙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 옛사람과 죄와 세상과 마귀와의 싸움으로 나타나난다. 그런데 이 같은 싸움이란 궁극적으로는 교리의 변증이 아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차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고 또 그리스도적 품성이 그 인격에서 항상 드러나는 것이 힘 있는 변증이다. 이 같은 위치에 이르려면 도의 초보를 닦는 데서 벗어나 장성한 자리에 나가야 한다. 우리는 무지하고 총명이 없어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는 더 높은 위치에 이를 수가 없다. 따라서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생활을 하되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바른 기도 생활이 필수적이다.
맺는 말
이상에서 이 책의 내용을 대강 본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의 위치와 생의 목표와 관련하여 기도가 무엇인지 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본서는 풍부히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책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풍부한 교훈으로 인도하여 우리로 자신을 반성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힘을 내어 하나님께 항상 기도할 마음을 갖게 한다. 본서에서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잘못된 기도의 예에서 이교도, 신비주의자, 합리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을 만난다. 우리가 그들의 신앙 약점을 교의적으로 판단하지만 실제 기도의 내용에서 그 같은 요소가 우리의 기도 생활에 젖어 있음을 생각하고 놀라게 된다. 이는 구원론의 부재와 투철하지 못함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기도는 구원론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고 그 이름을 위하여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기도를 명하시고 약속하셨다. 이를 믿고 기도하면 천지보다 크시고 지극히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말 못하는 어린이의 중얼거리는 것 같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귀를 기울이시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다운 심정과 정신을 불어넣어 주시려고 즉답도, 변답도, 지답도, 체답도 하시는 것이다. 저자의 모든 서책이 그러하듯이 이 책에서도 우리는 그의 심오한 사상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