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제목

저자

 

홈 > 소식지 > 교회 소식

 

|  제 52호

 

제6차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ICRC) 참관기 (1)
정병길  (강변교회 목사)

  

2005년 10월 12일(수)-10월 19일(수)에 제6차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Reformed Churches, ICRC)가 남아프리카 자유개혁교회 프리토리아 교회의 예배당에서 열렸다. 독립개신교회는 김헌수 목사와 필자를 방문 대표로 파송하여, 회의에 참석하고 그곳의 다른 교회들과 사귐을 가지며 독립개신교회를 소개하도록 하였다. 이에 본인은 방문 대표로서 보고 들은 바를 (1) 회의 진행에 관하여 (2) 이 모임의 현안과 전망에 관하여 (3) 이 모임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 관하여 몇 차례로 나누어 소개하려고 한다.

  
 
1. 회의 진행에 관하여


ICRC는 하나 되는 세 고백서(The Three Forms of Unity, 즉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경)와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가 고백하는 바를 따라 구약과 신약의 성경을 믿는 교회들의 사귐이다. 이 모임은 매 4년마다 한 차례씩 회합을 갖는데, 이를 통해 이 모임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현안들을 해결한다. 이 모임은 회원 교회 간에 믿음의 일치를 증진하고 교회적 사귐을 도모하며, 선교 혹은 교회가 수행해야 할 여러 가지 사명 수행에서 서로 협력하며, 교회들이 현시대에 당면한 공동의 문제를 함께 연구하고 원만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서로 나눔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개혁 신앙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 수도인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이번 제6차 ICRC에는 22개 회원 교회 대표 47인, 5개 참관 교회 대표 14인, 8개 방문 교회 대표 10인, 그리고 기타 손님 등을 포함하여 총 8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 모임에 관하여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독립개신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일체 됨을 생각할 때 우리도 이 모임에 참석하여 세계 개혁교회들의 현재 동향을 파악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독립개신교회에 내려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의 존재를 그들에게 알림으로써 서로 사귐을 갖는 것이 마땅한 바라고 판단하여 2001년에 필라델피아에서 모였던 제5차 ICRC에 참석한 데 이어 이번에도 방문 대표를 파송하였다.


회의는 10월 12일(수) 저녁 7시에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개회 예배에서 이번 회의를 주최하고 회의 장소를 제공한 남아프리카 자유개혁교회 소속 프리토리아 개혁교회의 클라인(Rev. Kleijn) 목사가 사도행전 15장을 읽고 설교하였다.


다음 날(13일) 오전에 계속된 회의에서는 먼저 의장단을 구성하였다.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의 드 흐라프(Bort de Graaf) 목사가 의장으로, 뉴질랜드 개혁교회의 호이트(Bruce Hoyt) 목사가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통신 서기로는 캐나다 개혁교회의 스프론슨(Cornelius van Spronsen) 목사가, 기록 서기로는 영국과 웨일스의 복음주의 장로교회의 네일러(Peter J. Naylor) 목사가, 그리고 회계로는 캐나다 개혁교회의 행크 베이렌즈(H.A. Berends) 장로가 선출되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주권”이라는 공동 주제로 하나님 말씀의 교훈을 담은 4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신자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라는 제목으로 캐나다 개혁교회의 드 비셔(A.J. de Visser) 교수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라는 제목으로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의 마리스(J.W. Maris) 교수가, “세상을 향한 복음 전파의 일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라는 제목으로 인도네시아 개혁교회의 데단(Y. Dethan) 목사 및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로버트슨(D.A. Robertson) 목사가 각각 발표하였다.


또한 이번 회의에서는 ICRC가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각 회원 교회 및 위원회의 건의들이 논의되었고, 또한 회원 교회 가입을 신청한 교회들 중에서 그 자격 요건을 검토하여 회원 교회로 받기 위한 토론이 있었다.


회의는 오전 9시에 기도회를 갖는 것으로 시작하여 오전에 두 회기, 오후에 두 회기, 그리고 저녁 식사 후 또 한 회기 등 저녁 9시까지 쉴 틈 없이 진행되었다. 대표들은 60대와 70대의 연령층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오히려 노령의 이분들이 정력적으로 회의를 주도해 나가며 치열한 토론을 벌였고, 또한 토의의 거의 대부분이 만장일치로 결론이 났다. 매 회기 끝에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였는데 이를 인도한 목사들이 아주 적절한 본문을 읽고 말씀을 전하므로 그 토론을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고 반성하며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ICRC의 성격과 존립 목적을 가장 잘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은 신입 회원 교회 가입을 결정하는 절차에서였다. 이번 회의에는 5개의 교회가 가입을 신청했는데, 그중 스페인 개혁교회, 콩고 개혁교회, 그리고 남아프리카 개혁교회 등 3개의 교회가 회원 교회로 받아들여졌다.


스페인 개혁교회(Reformed Churches of Spain, Iglesias Reformadas de España, 약어 IRES)


프란시스코 고메즈(Francisco Gomez) 목사가 대표로 스페인 개혁교회를 소개하였다.

“스페인은 소위 제1세계에 속하지만 개신교 신앙에 관한 한 제3세계에 처하였다 할 수 있다. 그 영적 빈곤이 대단히 심각하다. 지난 3년간 통신 서기의 안내 덕분에 스페인 개혁교회를 이 모임에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스페인에서도 성경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스페인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핍박으로 스페인 종교개혁은 좌절되었고, 성경을 번역했던 사제들은 외국으로 망명해야만 했다. 개혁 신앙을 가진 신자들을 혹독하게 핍박했던 종교 재판소가 없었다면 스페인은 그때 얼마 지나지 않아 종교개혁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스페인을 다스리던 필리페 왕은 ‘이단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사막을 다스리는 편이 더 낫겠다’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전하는 것을 금하였다. 따라서 그 후 3세기 동안 스페인은 완전한 침묵의 세월을 지내게 되었다. 1968년에 복음 전파로 제2의 종교개혁이 시도되었으나 프랑코 독재 체제하에서 개신교회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1978년에 제정된 새로운 헌법은 복음 전파와 교회 설립의 자유를 보장했다. 스페인의 개신교 신앙의 역사는 이렇다. 플리머스 형제단이 스페인 남부로 들어와 정착하게 되어 스페인에 개신교 신앙이 유입되었는데, 그 후 감리교 혹은 성결교 신앙이 이 교회들에 가미되면서 그 신앙적 정체를 알 수 없는 교회들이 형성되어 그곳에 존재하게 되었다. 스페인 개혁교회는 그러한 신앙 공동체를 개혁 신앙으로 개혁하며 나아와서 1992년에 스페인 개혁교회를 설립했고 국가의 인정도 받았다. 지금 스페인 인구가 4천 만 명인데, 우리 교회의 회중은 300명이며 6개 교회에 7명의 목사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개혁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주춧돌을 모으는 중에 있다.”


아주 강력한 로마 가톨릭이 지배하는 스페인에 이렇게 최근에 개혁교회가 설립되었다. 이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하나 되는 세 고백서를 신앙고백으로 택하고 있고 또한 도르트 교회법을 교회 정치의 원리로 삼고 있다. 1989년 이래로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와 매년 접촉을 갖고 있으며 영국과 웨일즈의 복음주의 개혁교회와도 사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교회는 만장일치로 회원 교회로 받아들여졌다.


콩고 개혁교회(Reformed Church in Congo)


셍가(Ngoy Nsenga) 목사가 콩고 개혁교회를 소개했고, 이 교회도 회원 교회로 받아들여졌다.

“콩고는 아주 가난한 나라이며 200여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콩고 개혁교회는 미국 기독교 개혁교회의 전도 방송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로 처음 결성을 보게 되었다. 1981년에 최초로 액상 프로방스 신학교에 두 명의 목사 후보생을 보냈는데, 1984년에 이들이 신학 교육을 받고 돌아와 목사 임직을 받고 최초의 목사가 됨으로써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에서 선교사를 파송하여 돕고 있으며 현재 6명의 목사 후보생이 포체스톰 신학교(남아프리카 개혁교회)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 콩고 개혁교회는 250개의 교회와 22명의 목사와 9명의 목사 후보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면한 큰 문제는 교회가 가난하여서 목사를 지원할 수가 없지만 더욱 많은 목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콩고는 11개 주로 되어 있는데, 지금 4개 주에서 교회가 서 나가고 있고 나머지 7개 주에도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겠다. 콩고 개혁교회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경, 그리고 프랑스 신앙고백서를 고백한다. 미국 개혁교회는 그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여 자연스럽게 교제하게 되었고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와는 1990년 이후 자매 관계를 맺고 있다.”


셍가 목사는 자기가 돌보는 11개의 교회가 지난 성탄절 때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렀는데, 그 찬송이 7개의 방언으로 불려졌고 그것이 참 장관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들려주기도 하였다. 이들은 특히 전도에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고 했다. 이 교회도 만장일치로 가입이 결정되었다.


남아프리카 개혁교회(Reformed Churches in South Africa, GKSA)


남아프리카 개혁교회도 회원 교회로 가입했다.

“남아프리카 개혁교회는 1652년부터 네덜란드 이주민이 정착하며 하나 되는 세 고백서를 따라 교회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1688년에는 프랑스에서 핍박을 피하여 이곳에 이주한 위그노들이 교회에 가담하였다. 1814년에 영국이 케이프타운을 점령한 이후 이 교회는 화란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라 불리게 되었다. 1852년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개혁교회(Hervormde Kerk)가 수립되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회가 신앙과 정치 형태를 변경했기 때문에, 1859년에는 이 교회와 분리하여 남아프리카 개혁교회가 결성되었다. 남아프리카 개혁교회는 하나 되는 세 고백서와 도르트 정치 모범을 채택하고 또한 시편과 성경 구절에 곡을 붙여 하나님을 찬송한다.”


남아프리가 개혁교회는 420개의 교회와 350명의 목사, 그리고 약 13만 명의 교인으로 이루어진 상당히 큰 교회이다. 그렇지만 개혁 신앙에서 이탈한 미국 기독교 개혁교회와 자매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또한 여자 장로와 집사를 세우는 문제를 다음 총회에서 결정하기로 되어 있다. ICRC의 회원 영입을 위한 위원회는 이러한 실정을 잘 파악하여 남아프리카 개혁교회가 이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한 다음 2009년의 차기 모임에서 다시 회원권을 신청하는 것이 좋으리라는 안을 만들어 전체 회의에 상정하였다.


그런데 전체 회의에서는 지금 이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현재 남아프리카 개혁교회 내의 개혁 신앙을 소유한 분들을 강력하게 지지함으로써 이 교회가 개혁 신앙을 따라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좋으리라는 수정안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위원회의 안이 폐기되고 수정안이 21:1로 채택되었다.


회장인 드 흐라프 목사는 이 교회 대표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을 ICRC 밖에 두는 것보다 안에 두고 격려함으로써 개혁 신앙의 기름을 계속해서 공급하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당신들이 2006년에 모이는 (남아프리카 개혁교회의) 총회에서 지금 논의된 모든 것을 잘 해결하고 난 다음, 2009년(의 제7차 ICRC)에는 아주 반가운 얼굴로 만나자” 하고 인사를 했다.


이에 교회 대표는 “여기에서 토의되고 결정된 것을 우리 총회에 가서 다 보고하고 격려하겠다.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 때문에 토의를 한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며 그것을 총회에서 보고하여 바른 신앙 위에 서서 나가도록 격려하겠다” 하고 인사를 했다.


회원 교회로 가입을 신청한 5개의 교회 중 제6차 ICRC에서는 이렇게 3개의 교회가 회원 교회로 받아들여졌고 2개의 교회는 거부되었다. 회원권을 신청하였다가 거부된 교회는 2000년에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에서 분립한 스코틀랜드 자유교회[법통](Free Church of Scotland [continuing])와 미얀마 연합 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es in Myanmar)이다. 분립한 스코틀랜드 자유교회는 신앙상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보다는 분립 과정에서 노출된 신실치 못한 태도가 문제가 되었고, 미얀마 연합 개혁교회는 그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거부 사유가 되었다. 회원 교회 대표들은 실망하지 말고 다음에 다시 한번 신청하라고 격려했지만, 이 두 교회 대표들은 실망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ICRC는 각각의 회원 교회가 모여 회의체의 성격을 지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회원 교회 가입의 일을 매우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교회 일치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따라 교회 간에 사귐을 갖고 서로 격려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또한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대한 복종이요 세상을 향한 참된 신앙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회의는 회원권을 자기의 권리인 양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기는 태도를 유지하며 그리스도의 능력과 사랑이 그들 가운데 드러나기를 바라는 태도를 취했다. 따라서 남아프리카 개혁교회는 강력한 개혁 신앙의 후원 그룹을 얻게 되었고 스페인 개혁교회와 콩고 개혁교회도 든든한 보루를 얻은 것 같다. 그리고 스웨덴 복음주의 교회가 이번 대회에 와서 자기들을 소개한 다음 내용도 ICRC가 그 설립 목적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스웨덴 복음주의 개혁교회(Evangelical Reformed Church in Sweden, ERCS)


스웨덴에서 데이빗 베르크마크(David Bergmark)라는 젊은 목사 후보생이 참석하여 자기 교회를 소개하였다. 그는 곧 목사 임직을 받아 스웨덴 복음주의 개혁교회에 속하여 그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릴 분이다.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루터교회가 지배했고 따라서 거기에 개혁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아마 놀라운 소식이 될 것이다. 스웨덴은 1850년까지 국법으로 루터교회 이외의 다른 교회의 설립을 금하였다. 스코틀랜드 자유교회가 그 선교의 열심으로 세계 방방곡곡에서 유명하다 하나 스웨덴에서만은 아니다. 스웨덴은 개혁교회가 없던 나라이고 개혁 신앙을 모른 채 지내왔다. 나는 스웨덴 사람으로 미국에서 길림을 받았는데 이때 개혁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서 30여 명의 개혁 신앙 소유자들이 지도자도 없이 모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서 신학 공부를 했고, 다음 달(11월)에 미국에서 목사 임직을 받은 후 스웨덴으로 돌아가서 스웨덴 최초의 개혁교회 목사로서 그 소수의 개혁 신앙 소유자들을 지도해 나갈 것이다.


스웨덴은 현재 사회주의와 국가주의가 종교를 대신하고 있고 또 여권주의도 아주 대중적인 종교 중의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여자가 집에서 가사 일을 돌보며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그 사람이 자기들 사회에 아무것도 기여하는 것이 없다 하여 아주 소외시켜 버린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강력한 적들을 뚫고 나가야 한다. 스웨덴은 개혁 신앙의 지도자들이 필요하고 또한 스웨덴어로 번역된 개혁 신앙 서적도 필요하다.”


이 교회는 아직 완전히 형성된 것이 아니므로 이 모임의 회원 교회로 가입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분이 스웨덴에 돌아가서 목회를 잘하시면 스웨덴 교회도 얼마 되지 않아 이 모임에 가입할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자의 다른 글 보기

가정에 대하여 (I)

[1994년 05월] 12호

논단

가정에 대하여 (II)

[1994년 10월] 13호

논단

『주기도문 강해』

[1998년 07월] 21호

책 소개

『그리스도 안의 유아』

[1998년 12월] 23호

책 소개

『기도에 대하여』

[1999년 10월] 25호

책 소개

찬송에 대하여

[2000년 06월] 28호

논단

ICRC에 참관하면서

[2001년 05월] 32호

교회 소식

『예수께서 가르치신 율법의 참뜻』
- 산상보훈 2, 마태복음 5:13-48 강해

[2002년 12월] 36호

책 소개

제2회 ICRC 아시아 태평양 지구 선교 대회 참관기

[2003년 03월] 37호

교회 소식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산상보훈 3)

[2003년 07월] 39호

책 소개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열매』(산상보훈 4)

[2004년 08월] 45호

책 소개

고재수 교수의 『세례와 성찬』(개혁 신앙 강좌 4)

[2005년 05월] 49호

책 소개

제6차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ICRC) 참관기 (1)

[2005년 12월] 52호

교회 소식

제6차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ICRC) 참관기 (2)

[2006년 02월] 53호

교회 소식

제6차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ICRC) 참관기 (3)

[2006년 05월] 54호

교회 소식

종교개혁의 날을 기억하다

[2006년 12월] 57호

논단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보라』

[2007년 12월] 62호

책 소개

‘개혁교회들의 국제 모임’(ICRC)의 아시아 지구 대회 참관기

[2008년 02월] 63호

교회 소식

교회의 통일

[2008년 06월] 65호

논단

신자는 언제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2009년 04월] 70호

논단

독립개신교회 헌장 개정의 의의

[2009년 10월] 73호

논단

독립개신교회가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ICRC)의 회원 교회가 됨

[2009년 12월] 74호

교회 소식

이스라엘에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2010년 06월] 76호

논단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기도하라"(마9:38)

[2010년 12월] 79호

논단

임시 의정회를 시작하며

[2011년 05월] 81호

교회 소식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2012년 05월] 84호

논단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012년 12월] 87호

성경 강해

새해 단상

[2014년 02월] 91호

논단